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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국보 이야기 – 잘 알려지지 않은 보물들(국보 126, 284, 231호)

by jastella-1 2025. 5. 5.

‘국보’라 하면 흔히 불국사, 석굴암, 팔만대장경 같은 유명 문화재를 떠올리지만, 전국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국보와 보물이 무수히 존재합니다.

이 유물들은 대중의 관심 밖에 있지만, 각각의 역사적 배경과 미학, 기술은 오히려 잘 알려진 문화재보다 더 깊은 스토리와 정교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잊혀졌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한민국의 숨은 국보·보물들을 소개하며, 그 역사적 의의와 보존의 필요성을 되짚어 봅니다.

 

목차

잊혀진 국보 이야기 – 잘 알려지지 않은 보물들
잊혀진 국보 이야기 – 잘 알려지지 않은 보물들

국보 제126호 금동보살입상, 7세기 조각의 정점

충청북도 청주 용두사지에서 출토된 국보 제126호 금동보살입상은 대중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유물이지만, 한국 고대 불교조각의 정점을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높이 15.5cm의 작은 동상이지만, 정제된 비례와 온화한 미소, 부드러운 옷 주름 표현 등에서 7세기 신라 불상의 예술적 완성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보살입상은 얼굴은 타원형에 가까우며, 눈과 입은 조용히 웃는 듯한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머리 위에는 작은 관(冠)이 얹혀 있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보이며 들고 있으며, 왼손은 아래로 내린 형상입니다. 이는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與願印)’을 표현한 것으로, 중생에게 두려움 없이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자비의 상징입니다.

보통 많은 이들이 불국사 석가여래좌상이나 석굴암 본존불을 중심으로 한국 불상미를 평가하지만, 이 금동보살입상은 소형 불상임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정교함과 상징성, 표정의 섬세함에서 오히려 더 고차원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또한 이 유물은 당시 불교가 귀족과 왕실 중심에서 서서히 민중에게로 확산되던 시기의 작품으로, 신라 후기 대중불교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 중이지만, 관련 안내판이나 해설 자료가 부족해 관람객의 발길은 짧게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화재는 전시만큼 해설과 관심의 밀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되새기게 합니다.

국보 제284호 상원사 동종,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종

강원도 평창 상원사에 있는 국보 제284호 상원사 동종(銅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 초기 범종입니다.

많은 이들이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떠올리지만, 상원사 동종은 조선 왕조의 건국 초기 정신과 기술을 담은 첫 종이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이 종은 1469년(세조 15년)에 제작된 것으로, 높이 1.05m, 지름 61.5cm 크기로 당시 종에 비해 작지만, 내부 구조와 음향 설계가 매우 정교합니다. 종의 어깨 부분에는 연꽃과 보살상, 구연부(입구)에는 범자문(梵字文)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단순한 공예물이 아닌 종교적 의례와 국왕의 권위까지 반영한 유물임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 동종은 ‘금속 주조기술’과 ‘음향 설계 기술’이 뛰어나, 타종 시 은은하면서도 오래 울리는 공명음이 주변 산사의 고요함과 어우러져 일종의 수행 공간을 완성합니다.

이는 단지 공예품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 종교의 울림이 어우러진 문화 복합체로도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상원사는 월정사보다 관광객 수가 적고, 관련 문화재 해설 프로그램도 부족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 종은 단지 ‘옛 종’이 아니라, 조선 건국의 사상, 불교의 역할, 예술 기술을 한데 보여주는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교육 콘텐츠화가 절실한 유산입니다.

국보 제231호 천전리 각석, 돌에 새긴 선사와 역사

경상북도 울산의 외진 계곡에 위치한 국보 제231호 천전리 각석은 한눈에 보기엔 그냥 바위에 새겨진 그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각석은 선사시대와 삼국시대의 문화를 동시에 보여주는 기록과 예술의 복합 유물입니다.

바위에는 고래, 사슴, 인물, 기하학무늬 등 다양한 선사시대 그림이 새겨져 있으며, 동시에 신라시대 화랑의 이름, 시구(詩句), 기도문 등이 병기되어 있습니다.

즉, 이 유물은 단순한 벽화가 아니라, 약 4,000년에 걸친 역사와 문화가 겹겹이 새겨진 살아 있는 역사서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바위에 새겨진 문자 중에는 당시 유행한 한문 시구나 화랑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낙서’가 아니라 제사의식과 영험을 믿고 남긴 일종의 신앙 행위로 추정됩니다.

고래 그림은 울산 지역이 선사시대부터 고래잡이와 해양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임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로 활용되며, 이는 지역 고대경제사 연구에도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현재 이 유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라 있지만, 제대로 된 보호각이나 접근 안내가 부족하고, 외부 훼손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디지털 복원, 현장 교육, 가상전시 플랫폼 도입 등 현대적 방식의 보존 전략이 시급한 국보 중 하나입니다.

 

국보는 이름난 문화재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몰랐던 이름 없는 유물 속에도 한국사의 깊이와 감성이 새겨진 보물들이 수없이 존재합니다.

금동보살입상의 미소, 상원사 동종의 여운, 천전리 각석의 기록… 이 모든 것은 시간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누군가의 기억을 기다리는 조용한 역사입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유명한 문화재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잊혀진 국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가치를 되살리는 일입니다.

교육기관과 박물관, 디지털 플랫폼이 함께 협력하여 이 유물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전달할 때, 우리는 단절된 역사와 감정을 다시 연결할 수 있는 다리를 놓게 됩니다.

가까운 박물관이나 지역 유적지에서 잊혀진 보물 하나를 발견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또 하나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